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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속 여인] 마티스 부인 아멜리의 초상

기사승인 2016.09.25  23: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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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를 쓴 여인 1905.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년 마티스는 부인초상화를 파리 살롱 도톤노 전람회에 출품하면서 마티스가 야수주의 야수파라는 것을 알리게 된 그림이다. 마티스는 왜 부인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을까?  아멜리는 크고 화려한 모자를 쓰고, 꽃이 그려져 있는 드레스를 입고 안락의자에 앉아있다. 모자의 표현이 사실적이지 않다라기 보다는 그냥 물감을 올려놓았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올린 꼴이 모자만 보았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얼굴위에 올려 있어 모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으로 얼굴을 칠한 것이 모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얼굴의 녹색. 연보라색. 파란색. 목의 빨강과 주황색은 색을 칠한 것이 아니다 마치 야수처럼 강한 이미지에 감정 및 장식적이고 경쾌한 텃치에 임의적인 표현을 느낄 수 있다. 마티스의 색은 그냥 낙서하듯 칠해진 것이 아니다. 그의 색은 질서가 있고 색의 처리로 명암을 알 수 있으며 색만으로도 얼굴 전체의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만 보다가 마티스의 아멜리의 초상화를 보니, 여인의 우아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초상화이다. 회화의 전통을 파괴한 마티스의 초상화는 입체적, 공간적, 정교함까지 전통을 추구하는 미적가치까지 무시하는 행위였다. 마티스의 초상화는 모든 미술의 균형과 조화 질서를 무시한다. 마티스는 모델의 인물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리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인물의 내면보다는 색의 중심으로 묘사하고 선과 장식으로 인물을 표현했다.아멜리도 이 초상화를 좋아했을까? 

마티스는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진정한 화가에게 장미 한 송이를 그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장미를 제대로 그리려면 지금껏 그렸던 모든 장미를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앙리 마티스)

마티스가 ‘모자를 쓴 여인‘ 부인의 초상화를 전시했던 도톤노 전람회는 야수파의 시작이다. 야수파란 단어는 그대로 현실을 거부하는 색상, 난폭하고 통제되지 않은 방식의 비자연적인 색상. 프랑스어로 야생 짐승들이라는 것이다. 이 이름의 양식은 20세기 초 프랑스에서의 예술운동과 미술화풍으로 마티스, 드랭, 블라맹크. 루오, 망강, 뒤피 등과 살롱 도톤느에 출품 했을 때, 이 들의 도발적이고 화려한 색채를 보고 예술비평가 루이 보셀이 ‘야수(포브 Fauves)와 같다’라고 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포비즘이라 한다. 

푸른색 붉은색의 원색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마르케의 소년두상을 둘러싸고 있으니 마치 야수들에게 둘러싸인 도나텔로라고 외치면서였다. 마르케는 마티스의 동료로 함께 야수파의 활동한 화가이다. 이들은 1905년에서 1908년간의 3년이란 세월의 짧은 활동으로 멈추었지만 후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와 입체감을 무시한 평면적인 구성은 입체파와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티스(Heinri Emile-Benoit Matisse, 1869년 12월 31일 - 1954년 11월 3일).는 북(北)프랑스의 카토 출생으로 법률을 전공한 유망한 법조인이었다. 갑작스런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 중이었을 때 그의 화가인 어머니가 그를 위해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미술도구를 준비해 준 것이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이다. 

▲ 마티스 부인의 초상. 녹색의 선 1905.

1905년 도톤느에 ‘모자를 쓴 여인’을 출품하고 바로 ‘초록의 선’을 그렸다는 부인의 초상화이다. 출품한 작품이 야수와 같다라고 표현한다면 이작품은 경쾌함을 억제하고 포비즘의 다채로움을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모자를 쓴 부인의 초상화는 물감을 덕지덕지 올려 발랐다는 인상에서, 녹색의 선은 색채 대비와 억제된 감정과 장식적인 구성이 임의적으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또한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상식에서 벗어난 색의 본질로 표현하고 있다. 얼굴 중앙을 가르는 초록선은 따뜻함과 차가움, 밝고 어두움의 그림자를 나누는 경계선이 된 것 같다.

얼굴에 녹색과 빨강, 노랑과 보라의 보색관계로 입체감을 색채로서 표현하였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원색은 무질서하기 보다는 정리되고 착실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어, 어느 하나라도 우연히 칠한 것 같지 않다. 정리된 머리의 보라색, 목으로 이어지는 노란색의 그림자, 바탕의 따뜻한 빨강과 차가운 파랑색으로 구분하여 튀어나와 보이고 뒤로 물러나 보이는 시각적인 인상으로 인한 추상적 색채를 묘사하면서 인물의 표현을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고 그림을 장식화 한다.

우리가 첫눈에 발견할 수 있는 색채는 강렬하다는 것이다. ‘녹색의 선‘ 마티스부인의 초상화는 강렬한 색채들 간의 대비와 터치. 명암. 공간표현 여러 가지의 색채가 보여 복잡해 보일 수 있으나,  반대로 그림이 단순해 보인다는 것을 우리는 시각적 느낌으로 전달 받고 있으니, 이것을 색의 마법사라고 하는 것인가?

▲ 서양화가 베로니카 유 미

마티스의 선과 장식은 인물을 명쾌하게 만들뿐 아니라 색과 선의 어울림을 볼 수 있다. 그림 앞에서의 긴 시간동안 난 녹색의 선(마티스 부인의 초상화)에 대해 사랑을 느낀다. 상대방에게 우호적이고 애정과 빛을 주는 그런 사랑. 녹색의 선은 우울함도 없다. 슬픔도 없다. 거짓도 없다. 기쁨과 화려함, 밝음, 뛰어난 활기참을 보여주고 있다. 마티스의 녹색은 희망과 기쁨 혹은 자연을 상징하고 있다. 화려하며 애정이 깃든 주황색은 혹시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표현된 것일까? 내성적이며 보수적이고 의지가 강한 색을 표현한 마티스는 아내 옆에서 자연을 재현하며 예술가의 지성과 감동으로 자신의 야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사타임 kwonys6306@naver.com

<저작권자 © 시사타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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